소권괴초2 용등호약 1983

용등호약(龍騰虎躍, Fearless Hyena Part II, 1983)은 국내에서는 소권괴초2로 소개가 되었다. 아주 어린 시절에 티비에서 방영한 것을 보았을 것 같다. 성룡의 70년대 쿵후 영화는 뒤늦은 세대인 나에게는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용등호약이 왜 소권괴초2로 알려져있는지는 독특한 제작 배경에 있다. 70년대 후반 사형조수(1978)와 취권(1978)의 대 히트 이후로 1980년대 초 성룡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로웨이(나유) 감독의 밑에서 노예 계약에 가까운 상태에서 시키는 대로 허접한 영화에서 허접한 연기나 해야했던 성룡은 인기가 생기자 그가 직접 감독을 하기를 원했다. 자신의 비전을 실현시키고 싶어졌을 것이다.

그런 의지에 따라 성룡은 소권괴초(1979)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많았고, 또한 로웨이 감독의 밑에서는 일회성으로 그칠 가능성도 높았다. 그러다가 성룡은 골든 하베스트의 유혹에 넘어가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만다.

이건 큰 문제였다. 이중 계약이었고, 배신에 해당하는 행위였다. 

로웨이 감독은 대노를 했고 성룡을 두고 위험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성룡의 큰 형 홍금보가 나서서 왕우에게 부탁을 하고 여러 조율이 이루어진 후에 결국 성룡은 골든 하베스트로 떠나게 된다.

여전히 화가 남은 로웨이 감독은 성룡이 소권괴초를 찍다 남긴 필름을 활용하기로 한다. 그의 인기를 활용해서 돈을 쥐어짜보겠다는 속셈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용등호약이 만들어졌다.

성룡을 찍어둔 필름이 부족했기 때문에 용등호약은 절반은 성룡이 나오고 절반은 새로운 배우들이 나와 연기를 한다. 성룡과 그의 사촌으로 등장하는 혜천사가 주인공이 되어 영화를 이끌어 간다.

이소룡 사후에 만들어진 사망유희(1978)는 아시아에서 그와 닮은 배우를 공개모집하여 완성이 된 작품이다. 이소룡이 찍다 남긴 필름을 활용하고 대역을 이용해서 완성이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로웨이 감독이 사망유희에서 힌트를 얻었을려나 싶은 뇌피셜도 있다.

다만 로웨이 감독은 사망유희만큼 돈을 들이고 정성을 들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성룡을 닮은 사람을 굳이 섭외하지 않고 사연이 있어서 변장을 해야 하는 설정을 넣은 다음에 이상한 분장을 한 대역 스턴트 배우가 액션을 펼친다. 거의 가면을 쓴 느낌으로 액션을 선보이는데, 누가 봐도 성룡이 아니라는 티가 난다. 

그래도 장면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비싼 필름 들여서 더 찍기 싫었는지 기존의 소권괴초의 장면을 가져다가 이어붙여서 영화를 완성한다.

영화의 배급 날짜를 살펴보면, 홍콩에서 1983년 3월 4일에 처음 개봉했고, 이후 프랑스, 일본,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도 상영되었다고 한다. 

83년에 개봉이 되었지만 영화 속 장면의 성룡은 대부분 70년 후반에 찍은 것으로 짐작된다. 영화가 70년대 후반 스타일이 때문에 이미 프로젝트A, 오복성을 비롯한 현대 액션으로 넘어온 성룡의 이미지와는 완전 다른 영화로 선보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저작권을 두고 법정 다툼도 있었다고 한다. 성룡으로서는 이런 영화가 자신의 이름으로 나오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재판 결과는 감독인 로웨이가 이겼다고 한다. 영화는 정식으로 개봉이 되었고, 성룡의 필모그래피에서 굉장히 이상한 작품 중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


영화는 성룡이 나오는 부분은 재미있다. 성룡식 액션이 돋보인다. 하지만 성룡이 나오지 않는 부분도 나름 액션이 성실하다. 분장을 한 스턴트 대역의 액션 역시 성룡의 느낌과는 다르지만 70년대 후반의 쿵후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볼만한 액션을 선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세대가 바뀐 83년에 개봉이 되었다는 사실.

영화의 후반부는 서글픈 짜깁기의 연속이다. 얼굴이 등장해야 하는 부분은 뒷모습으로 나오거나 앞에 나뭇가지가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꼭 대사를 해야 하는 장면은 기존의 소권괴초의 장면을 잘라 붙였다. 

거기에 임세관과의 대결 장면은 소권괴초의 마지막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러다 보니까 내가 뭘 보고 있나 싶어지는 순간 있다. 차라리 혜천사를 주연으로 새로운 작품으로 찍었다면 완성도는 더 높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한편 70년대 후반에 찍은 성룡의 영화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곳은 한국이다. 남한산성에서 찍은 듯 하다. 

90년대 초반에 중국이 촬영을 위한 로케지를 개방하기 전까지는 꽤 많은 영화가 한국에 와서 촬영을 하곤 했다. 홍콩에는 고전극을 찍을 절이나 궁궐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쇼 브라더스처럼 부자 제작사는 세트장을 거대하게 짓기도 했지만 골든 하베스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제작사는 한국에 왔다고 한다.

한국에서 찍은 많은 작품 중에서 풍경을 굉장히 아름답게 찍은 작품들이 꽤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대협 호금전이 찍은 작품들이 궁금하다. 하나씩 찾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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