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협 1979

 호협은 1979년에 만들어진 무협영화이다. 이 영화에 눈이 간 이유는 감독 때문이다. 영웅본색을 만든 오우삼이 연출을 맡은 영화이다. 


90년대에 사춘기를 맞이한 세대인지라 80년대 중후반의 홍콩 영화부터 익숙한 나에게 오우삼은 느와르 감독이었지 무협 영화나 코미디 영화 감독이라는 이미지가 전혀 없다. 하지만 사실 오우삼은 70년대부터 영웅본색을 만들기 전까지 코미디 감독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그러면서 간간히 본인이 추구하는 무협 액션을 만들었다고 한다.

오우삼의 필모그래피에서 호협은 그가 추구하는 액션에 대한 갈망이 담긴 작품이 아닐까라는 기대가 있어서 찾아보게 되었다. 오우삼의 독특한 감성이 담겨 있을 것 같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기대와는 다른 의미에서 독특한 작품이다. 무협 영화이지만 액션 연출은 쿵후의 느낌이 강하다. 최후의 대결에서 악역을 맡은 유강이 하늘로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면서 공격을 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땅에 발을 딛고 쿵후식 대결을 펼친다. 

79년이라는 시기를 생각해보면 당시 유행하던 대타식 액션 연출이 나오는 게 이상하지는 않지만 무협 영화와 쿵후 영화는 다른 장르의 영화이고 그래서 다른 액션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던 나에게는 참 기묘한 느낌이었다.

마찬가지로 영화 내용 역시 독특했다. 스토리의 구성은 전형적인 느낌이지만 그 속에 보여지는 캐릭터들이 어딘가 오우삼스러웠다. 우정과 의리를 주제로 하고 있고, 그렇기에 주인공들은 굉장히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지만 그의 스승이자 영향을 받은 장철 영화의 캐릭터와는 달랐다. 

주연을 맡은 위백과 유송인의 관계는 장철 영화의 강대위와 적룡과는 확연히 다르다. 둘의 사이는 더욱 친밀하고 어딘가 커플스러운 느낌도 들 정도였다. 

호쾌하고 의리를 지키는 위백이 유강의 간계에 속아 이리저리 이용당하는 와중에도 유송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속셈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위백과의 사이가 깊어지고 둘의 우정이 확연해지는 과정이 액션을 통해서 이어지는데, 이게 참 간드러지게 재미있었다.


유강에게 속아 이해성이 연기한 라이벌을 대신 공격하러 간 위백이 그를 도와주러 온 유송인과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적들을 헤치우는 과정은 둘의 우정이 깊어지는 것인지, 둘의 사랑이 깊어지는 것인지 모를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 부분은 주윤발과 이수현의 관계가 연상되었고, 오우삼의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영화의 구성은 전체적으로 조금 어긋나있다. 강조를 해야 할 부분과 이어야 할 부분에서 연출의 실수가 많은 느낌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오우삼 감독이 호협을 만들면서 너무 들떠서 실수를 많이 했다고 반성하는 내용을 본 기억이 있는데,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볼만한 구석이 많다. 풍극안이 연출한 액션 안무는 검을 들고 쿵후 대결을 펼치는 것처럼 만들어져서 자잘한 볼거리가 많다. 후반부의 액션 장면은 잠을 자면서 공격을 해오는 캐릭터라던지 등뒤에 붙어서 공격을 해온다던지 무협지 같은 설정의 캐릭터들이 나와서 재미있었다. 


영화의 대부분은 세트장에서 찍은 것 같은데, 영화 초반 풍극안과 위백의 대결 장면 만큼은 로케이션 촬영을 해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벌판에서 대결을 펼치는 데 검을 휘두를 때마다 동굴처럼 하울링이 있어서 조금 웃겼다. 그 시절 효과의 한계였을려나.

주연을 맡은 위백은 얼굴은 알지만 영화를 접해보진 못했는데, 검색을 해보니 장철 영화에 많이 나온 배우라고 한다. 영화 제목 호협에 어울리는 멋진 연기를 선보였기에 기회가 되면 또 영화를 찾아보고 싶다.

공동 주연을 맡은 유송인은 80년대 이후에 중년이 된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젊은 시절에 액션을 펼치는 모습이 신기했다. TVB 출신의 인기 스타였기 때문에 그 영향력을 활용해 오우삼이라던가 두기봉이라던가 느와르 거장들의 초기작 제작에 힘을 보태고 그들을 격려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양조위와 함께한 선학신침을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기에 좋아하는 배우이다. 

그 외에 음악을 맡은 진훈기라던가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스턴트를 하는 서충신이라던가 화성이라던가 익숙한 액션 배우들이 눈에 띄었다. 

여주인공으로 나온 위추화는 주로 tv에서 활약했지만 호협으로 영화를 데뷔해 담가명 감독의 명검과 초원 감독의 요혼에 출연했다. 

그나저나 영화 내내 주인공들은 술을 입에 달고 있다. 술을 마시고 병을 깨고 술을 마시고 깬다. 음식은 먹지 않지만 술은 마신다. 영웅의 기준이 주량인 세상이 무협이다.

한편 본인 영화에는 어떤 식으로든 얼굴을 드러내는 오우삼 감독이 이 영화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모르고 지나친 걸까?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황비홍 - 천하지남북영웅 2018

패가자 1981

화이트 스톰3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