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미도인 1989 - 임정영의 아쉬운 야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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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OTT에 있는 일미도인을 보았어요. 영화를 보다보니 그 시절에 극장에서 본 기억이 떠올랐어요. 영환선생과 강시숙숙은 최근에야 보았지만 나머지 영화는 그 시절에 꽤 봤었나봐요. 잊혀진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더라구요.  친구와 강시번생을 빌려본 기억이라던가 일미도인이나 강시와 부시맨 같은 것을 극장에서 본 기억도 떠올랐어요.  원제는 일미도인인데 2015년에 재개봉 하면서 강시선생:일미도인이라는 제목으로 소개가 되었네요. 강시 장르 영화라는 것을 알기 쉽게 보여주려고 한 거 같아요.  엄밀히 말하자면 제작사가 다르기 때문에 강시선생 시리즈에는 속하지는 않지만 애초에 투자 배급사가 같고 임정영이 도사로 나오는 작품이라서 강시선생:일미도인이라는 제목도 크게 틀리진 않는 것 같아요.  외전이라고 하면 맞을려나요. 해외에서는 스핀 오프로 정리한 것 같고, 일본에서는 영환도사5로 소개가 되었다고 하네요.  일미도인 제작 비하인드 시리즈의 일부는 아니지만 시리즈나 다름없는 이유는 투자 배급을 맡은 골든 하베스트의 전략 때문일 거에요. 강시숙숙 감상 때도 잠깐 언급했지만 강시선생 시리즈가 대성공을 거두자 임정영은 영환도사 캐릭터로 스타가 되었죠.  골든 하베스트의 성공 전략 중에 하나가 스타가 된 배우에게 위성 영화사를 만들어주고 본인 장르의 영화를 직접 제작하게 자율성을 줘서 완성도 높은 흥행 영화를 생산하게 하는 거에요.  이소룡에게 연출 권한을 줘서 맹룡과강과 사망유희를 감독하게 하거나 성룡에게 위성 영화사를 차려주고 직접 영화를 만들게 하거나 허관문에게 영화사를 차리게 해서 미스터 부 시리즈를 제작하게 하는 식이었어요. 당연히 홍금보도 골든 하베스트의 위성회사인 보화전영공사를 가지고 있었고, 거기서 여러 장르의 작품을 생산했어요. 그 중에 하나로 대성공을 거둔 것이 강시선생 시리즈였구요. 그렇게 새롭게 스타가 탄생하자 골든 하베스트는 임정영에게도 영화사를 차려주고 강시 장르 영화를 제작하도록...

강시숙숙 1988 - 강시선생 시리즈 4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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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시숙숙은 강시선생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에요. 홍금보의 보화 프로덕션에서 만들어진 강시선생 시리즈는 강시선생, 강시가족, 영환도사 , 강시숙숙이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1, 2편은 당시에 보았지만 3, 4편을 보지 못했다가 최근에 OTT에 올라온 작품을 뒤늦게 찾아보게 되었어요.  3편에 해당하는 영환도사를 즐겁게 보았기 때문에 강시숙숙도 기분좋게 찾아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1편인 강시선생 다음으로 재미있게 보았어요.  일단은 영환도사에 비해서 영화의 잔인도가 낮아요. 그로데스크한 장면이 상대적으로 적고, 소동극이 이어지는 느낌이어서 웃으면서 보았어요. 강시숙숙 제작 비하인드  강시선생으로 강시 붐이 일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반응이 온 작품은 강시가족이라고 해요. 강시가족에 나왔던 꼬마 강시의 캐릭터가 인기를 끌면서 강시 영화 장르가 본격적으로 자리잡았다고 하네요.  이 꼬마 강시는 대만의 헬로강시가 더 원조가 아닐까 싶기는 해요. 강시선생 대히트 이후에 대만에서 만든 강시소자가 일본에서 반응이 와서 시리즈로 제작이 되었고, 아예 일본의 투자를 받아서 TV시리즈로 만들기도 했다고 들었거든요. 강시 장르는 워낙 복잡하고 다양해서 매니아 분들이 더 잘 알 것 같아요.  그렇게 강시 장르의 인기가 폭발하자 아류작도 나오고 여러 범주로 변형된 하위 장르도 나오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유진위, 왕가위 콤비가 만든 맹귀차관, 맹귀학당 시리즈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흥행 라이벌로 등장하게 되요. 당시 골든 하베스트는 자신들이 발굴한 강시 장르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임정영에게 영화사를 차리도록 해요. 골든 하베스트는 영화가 히트하고 스타가 떠오르면 그 스타에게 영화사를 차려주고 알아서 제작을 하게 해서 배급을 맡는 형식으로 발전을 해온 영화사였어요.  모든 것을 갖춘 거대한 영화사 쇼 브라더스의 공장식 영화 생산에 맞서기 위한 선택이었는데, 이소룡, 허관영, 성룡, 홍금보 등등 새로운 스타가 나올 때마다 이 방식을...

일지광곤주천애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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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지광곤주천애는 칼 맥가의 감독 데뷔작입니다. 맥가 하면 떠오르는 것이 영화 최가박당의 대머리 형사 이미지에요. 어렸을 적 주말의 명화에서 2주 연속으로 본 최가박당 시리즈는 지금도 잊을 수 없네요. 그런 맥가 감독은 홍콩 영화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홍콩 영화의 현대적 이미지를 창조한 사람이라고 할까요? 최가박당은 그런 상징적인 영화에요. 하지만 최가박당이 하늘에서 뜬금없이 뚝 떨어졌을리는 없고, 그 전에 여러 탐색의 시기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탐색의 시작이 바로 일지광곤주천애가 아닐까 싶어요. 원제는  一枝光棍走天涯이고, 번역을 하자면 봉 하나를 든 사내가 천하를 유랑한다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영화 속에서 유가영이 연기하는 주인공 광곤이 봉을 들고 다니거든요. 이 봉은 장치가 있어서 삼절곤이 되기도 하고 분리가 되기도 하는 그런 거에요.  광곤은 이름이 아니라 노총각 혹은 나이든 사내 정도의 의미라고 하니까 이름이 없는 그냥 사내 정도라고 볼 수 있어요. 왜 이런 식으로 이름이 나왔냐고 하면 이 영화가 사실은 세르지오 레오니의 석양의 무법자의 홍콩식 번안 영화이기 때문일 거에요. the good the bad the ugly의 설정을 가져다가 the good the bad the loser 라고 만든 거에요. 이런 오마쥬 영화는 익숙하죠.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 역시 석양의 무법자의 한국판이니까요. 1976년에 맥가 감독은 감독 데뷔를 하면서 일본의 찬바라 영화에 영향을 받아 무협을 만들어내던 다른 홍콩 감독과 달리 서양의 작품을 가져와 자신의 느낌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 같아요 70년대 후반에는 독특한 코미디 감독이 많이 나왔는데, 영어에 능숙해서 서양의 코미디 쇼의 감각을 가져다 심야 쇼를 만들어 기존과 다른 감각을 선보인 허관문이 있었고, 뉴욕에서 영화 제작 공부를 하고 홍콩으로 돌아와 서양의 영화 감각을 접목시키려던 맥가 감독이 있었네요. 거기에 당시 코미디 감독으로 이름이 높았던 오우삼 감독도 있었고. 일지광곤...

천룡팔부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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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작 천룡팔부는 김용의 소설 천룡팔부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에요. 영화의 원제는 新天龍八部之天山童姥 신천룡팔부지천산동모에요. 무려 임청하와 공리가 공동 주연을 맡아서 화제였던 작품이에요. 당시 로드쇼인지 스크린인지에서 이 작품에 대한 기사를 읽고 기대에 차서 영화를 본 기억이 있어요. 아쉽게도 영화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요. 김용의 천룡팔부는 워낙 방대한 작품이기 때문에 한편의 영화에 담을 수가 없어요. TV시리즈로 만들어도 장편 시리즈가 될 내용이고, 그래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당연히 TV판 천룡팔부에요. 1997년판이 유명하다고 하네요. 1994년 천룡팔부는 장대한 원작 중에서도 허죽의 이야기를 가져와 메인 스토리로 삼았어요. 거기에 천상동모의 이야기도 가져와 두 갈래로 진행을 해요. 다만 원작의 복잡한 이야기를 담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각본가가 각색을 하다가 길을 잃은 것인지 영화의 스토리는 어지럽게 얽혀 있어요. 게다가 캐릭터 간의 관계성도 원작과 다르게 덧칠되어 있어요. 주연을 맡은 임청하와 공리는 명성에 비해서 아쉬운 결과물이 나왔어요. 동방불패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임청하는 이후 여러 무협 영화에 출연하면서 이미지 소모를 많이 해버렸어요. 필모그래피에서 이 작품이 마지막 무협 영화에 해당되는데, 그래서인지 그동안에 출연한 무협 영화의 이미지가 다 겹쳐서 보여요. 어떨 땐 동방불패 같기도 하고 어떨 땐 동사서독 같기도 하고 어떨 땐 백발마녀전 같기도 한 느낌이에요. 대륙의 연기파 배우 공리는 이 당시에 홍콩 영화에 자주 출연하면서 커리어를 넓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주성치와 찍은 당백호점추향과 도협2 상해탄도성은 최고의 선택이었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은 명성에 먹칠을 한 결과가 나왔어요. 와이어에 매달려 뿅뿅 거리면서 손가락으로 빔을 발사하는 어설픈 모습만 남았어요. 와이어에 익숙치 못해서 손가락을 다치기도 했다고 해요. 하지만 공리는 이 작품으로 임청하와 친해져서 대만족했다고 해요. 이전부터 좋아하던 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