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라지망 1988 - 서극과 황지강이 9개월을 싸운 작품

36년 만에 다시 본 천라지망은 마음을 흔들어 놓은 작품이다. 최근에 그 시절 홍콩 영화를 다시 보면서 실망한 작품도 많지만 재발견의 작품도 많다. 특히 사춘기 그 시절의 어린 소년이 읽어내기엔 어려운 성인용 작품을, 늦은 나이가 된 지금 보면서 새삼 감탄하는 작품들이 있다. 천라지망이 그러하다.

천라지망 스토리

중국 내전 중, 정군벽(양가휘)과 장, 유복광, 장조범 등 전우 넷은 하야(정소추)라는 장교에게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 전쟁이 승리하면서 탈출하게 된다.

고향에 돌아가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상하이로 간 군벽은 경찰이 되지만, 상하이는 부패가 만연한 곳이었다. 그리고 하야는 아편 밀매 조직의 부두목이 되어 있었다.

군벽은 마약 밀매 단속을 하다가 하야의 삼촌인 량을 사살하지만 상사인 원빈을 잃게 된다. 도움을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정군벽은 옛 전우들을 찾아내 함께 아편 밀매 조직과 맞서게 되는데⋯

천라지망 제작 비하인드

사실 천라지망은 서극의 전영공작실의 실패작이다. 당시 영웅본색의 대히트 이후로 제작자로서 막강한 힘을 휘두르던 서극은, 신예성 시네마시티의 감제 시스템을 적극 도입해서 본인의 구상을 실현시키는 데 활용했다.

시네마시티의 시스템은 칠괴라 불리던 신예성의 일곱 크리에이터들이 공동으로 구상하고 공동으로 합의해서 만들어진 스크립트를, 현장에서는 한 치의 수정 없이 그대로 만들어지도록 한 것이었다. 누가 감독을 맡든 간에 사실상 집행감독의 수준으로 정해진 대로만 찍어야 했다.

어찌 보면 양산형처럼 느껴지는 시스템이었지만, 애초에 스크립트를 공동으로 구상해서 완성도를 높였기 때문에 건드리지 말자는 주의였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시네마시티의 영화들은 최가박당을 시작으로 엄청난 흥행을 이루어나갔다.

서극은 이 시스템을 본인 중심으로 활용했다. 자신과 동료 영화인을 중심으로 사전에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집행감독이 완성하는 식으로 해보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직접 현장에서 연출을 하지 않아도 본인의 구상을 다양하게 실현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성공작도 있었다. 본인이 감제를 하고 정소동이 감독을 맡은 천녀유혼 시리즈가 그러했다. 동방불패 시리즈도 그러했다. 하지만 실패작도 많았다. 자신의 구상을 너무 강요하다가 감독과 불화가 심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소호강호가 그러했고, 성시특경이 그러했다.

천라지망도 그런 작품 중의 하나였다. 전영공작실의 실험작 중의 하나였던 천라지망은 원대한 구상의 영화였다. 상해를 배경으로 대하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기에는 많은 예산이 필요했지만 주어진 예산은 그렇지 못했다.

서극과 황지강의 불화가 심했다고 한다. 여러 캐릭터가 얽히고설킨 서사시를 생각했던 서극과 달리, 거친 액션의 리얼리즘을 추구하던 황지강은 애초에 맞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영화의 진행이 마음에 안 들어 서극이 직접 촬영에 나서는 일도 있었다고 하고, 무려 9개월이나 촬영이 이어지면서 영화는 산으로 갔다고 한다.

결국 최종적으로 황지강이, 출연진이자 편집자였던 호대위와 함께 그동안 찍어 놓은 필름을 쌓아 놓고 이야기를 다시 구성해서 개봉을 했다고 한다.

천라지망 감상

이러한 뒷배경을 알고 영화를 보다 보면 여러 가지가 보인다. 일단 영화에 와이드샷이 거의 없다. 배경을 보여주거나 하는 게 없이 화면이 굉장히 타이트하다.

상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세트장이 없었던 탓에, 여러 곳에서 로케를 하면서 배경이 보이지 않도록 인물 위주로 촬영을 했다고 한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함을 느꼈다. 다만 그 답답함이 주연을 맡은 양가휘의 캐릭터의 답답함과 이어지기 때문에 주제와는 잘 맞는 느낌이다.

또한 캐릭터의 면면이 굉장히 단순화되었다. 이야기의 구성이나 전개를 보면 더 깊은 저들만의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 빠른 편집을 통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다 보니 피상적인 인상만을 남긴다.

영화는 아마도 당시 전 세계적으로 히트했던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언터처블의 홍콩 버전을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양가휘를 필두로 이자웅, 정호남, 호대위의 구성은 언터처블의 4명을 떠올리게 한다. 양가휘 중심으로 이야기가 흐르다 보니 나머지 3명은 액션 장면을 위한 쩌리처럼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검색을 해보니 실제로 언터처블의 홍콩판을 영웅본색처럼 만들자는 구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촬영 중에 황지강 감독조차도 우리 이거 언터처블 찍는 거야? 라고 자문했다고 한다. 이건 투자자의 압박이었을까.

천라지망 배우들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은 것은 이미봉과 오가려의 존재이다. 당시 막 미스 홍콩 무대를 거친 이미봉은 여러 영화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쌓았는데, 천라지망에서는 섹시한 창부를 연기하면서 양가휘와 애정을 쌓는 역할로 나온다. 양가휘의 아내로는 오가려가 등장해 이미봉의 존재를 신경 쓰는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용호풍운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섹시한 이미지로 인기가 높은 오가려가 단아한 아내로 나오는 것이 신선했고, 이미봉의 사연이 깊은 창부 연기도 좋았다. 양가휘와 이미봉, 오가려의 어긋나는 관계는 서극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든다. 당시 서극이 만들었던 상하이 블루스나 도마단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정소추가 연기하는 하야와, 양가휘와 전우들의 대립은 황지강이 집중한 부분일 것이다. 특히 초류향으로 인기가 높은 잘생긴 스타인 정소추가 강렬한 느낌의 악역을 선보인 것은 굉장히 신선했다.

정소추가 연기한 캐릭터는 사실 항일 운동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영화 시작도 그러했지만 스토리상으로 보면 정소추는 단순히 아편 밀매 조직을 이끄는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무언가의 자금을 마련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때문에 영화의 버전마다 대사가 다르게 더빙이 되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서 새삼 느낀 것은 양가휘의 연기력이다. 68세인 현재 포풍추영을 통해서 다시금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중국의 연기황제로 불리고 있는데, 연기력 하나는 그 시절부터 정말 대단했던 것 같다.

그 외에 양가휘의 상사 역으로 원빈 감독이 나와서 의외였다. 두기봉 감독의 전용 무술 감독으로만 기억했는데, 의외로 다양한 영화에서 출연도 했다. 그 시절 홍콩 영화인들은 정말 만능으로 활동했구나 싶다.

천라지망 액션

천라지망은 영웅본색 이후로 쏟아진 여러 홍콩 액션 느와르 중에서도 액션이 인상 깊은 영화 중 하나이다. 영화 후반부의 액션은 영웅본색보다 성항기병에 가까운 거친 편집이 이어진다.

온몸에 총격을 받고 쓰러지는 이미봉의 이미지, 아빠를 지키기 위해 총을 집어 드는 딸의 이미지, 불길 속으로 정소추를 끌어당기는 오가려의 이미지, 총격을 받아 몇 번이고 앞으로 엎어지는 양가휘의 이미지 등등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강렬함이 가득하다.

그 외

황지강 감독은 이후에 야수형경이라는 거친 제목의 작품을 이연걸 주연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그 기획이 성룡의 눈에 띄어 중안조라는 작품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다시금 성룡과 연출 갈등을 일으키고 원치 않은 작품을 만들게 된다. 그 이야기는 중안조 감상 때⋯

천라지망 영화 정보

항목내용
원제天羅地網 (Gunmen)
개봉1988년 10월 22일 (홍콩)
상영 시간87분
감독황지강(黃志強)
감제서극(徐克)
각본나금휘(羅錦輝), 진경가(陳慶嘉)
촬영유위강(劉偉強), 임국화(林國華)
편집호대위(胡大為)
음악종정일(鍾定一)
제작사금공주(金公主) · 전영공작실(電影工作室)
출연양가휘(정군벽), 정소추(하야), 이자웅, 정호남, 오가려, 이미봉, 호대위, 서금강, 원빈
홍콩 흥행HK$4,825,777 (약 482만 홍콩달러)
등급극장 개봉은 등급제 시행 전 · 이후 비디오판은 III급

자료: 중문·광둥어·영문 위키백과, T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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