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작 천룡팔부는 김용의 소설 천룡팔부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에요. 영화의 원제는 新天龍八部之天山童姥 신천룡팔부지천산동모에요. 무려 임청하와 공리가 공동 주연을 맡아서 화제였던 작품이에요. 당시 로드쇼인지 스크린인지에서 이 작품에 대한 기사를 읽고 기대에 차서 영화를 본 기억이 있어요.
아쉽게도 영화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요. 김용의 천룡팔부는 워낙 방대한 작품이기 때문에 한편의 영화에 담을 수가 없어요. TV시리즈로 만들어도 장편 시리즈가 될 내용이고, 그래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당연히 TV판 천룡팔부에요. 1997년판이 유명하다고 하네요.
1994년 천룡팔부는 장대한 원작 중에서도 허죽의 이야기를 가져와 메인 스토리로 삼았어요. 거기에 천상동모의 이야기도 가져와 두 갈래로 진행을 해요. 다만 원작의 복잡한 이야기를 담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각본가가 각색을 하다가 길을 잃은 것인지 영화의 스토리는 어지럽게 얽혀 있어요. 게다가 캐릭터 간의 관계성도 원작과 다르게 덧칠되어 있어요.
주연을 맡은 임청하와 공리는 명성에 비해서 아쉬운 결과물이 나왔어요. 동방불패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임청하는 이후 여러 무협 영화에 출연하면서 이미지 소모를 많이 해버렸어요. 필모그래피에서 이 작품이 마지막 무협 영화에 해당되는데, 그래서인지 그동안에 출연한 무협 영화의 이미지가 다 겹쳐서 보여요. 어떨 땐 동방불패 같기도 하고 어떨 땐 동사서독 같기도 하고 어떨 땐 백발마녀전 같기도 한 느낌이에요.
대륙의 연기파 배우 공리는 이 당시에 홍콩 영화에 자주 출연하면서 커리어를 넓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주성치와 찍은 당백호점추향과 도협2 상해탄도성은 최고의 선택이었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은 명성에 먹칠을 한 결과가 나왔어요. 와이어에 매달려 뿅뿅 거리면서 손가락으로 빔을 발사하는 어설픈 모습만 남았어요. 와이어에 익숙치 못해서 손가락을 다치기도 했다고 해요.
하지만 공리는 이 작품으로 임청하와 친해져서 대만족했다고 해요. 이전부터 좋아하던 임청하가 출연한다는 말을 듣고 서극의 청사 출연을 거절하고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하죠. 서로의 결혼식에도 참석할 정도로 좋은 사이가 되었다고 해요.
영화의 연출은 전영강 감독이 맡았어요. 지난번에 리뷰한 애재흑사회 때도 말했지만 이 감독은 여배우들이 잔뜩 출연하는 영화를 많이 만들었어요. 그만큼 여배우들의 심기를 잘 맞추는 감독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천룡팔부의 연출도 임청하와 공리, 그리고 장민 사이를 잘 조절해달라는 의미로 선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에요.
제작을 한 영성영화사는 2년전 왕정이 연출한 녹정기를 찍을 당시에 임청하, 장민, 구숙정, 이가흔, 원결영 등등 여러 여배우들의 분량 조절에 실패해 사건이 터지기도 했었어요. 구숙정을 친애하던 왕정 감독이 그녀의 분량을 늘리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분량이 작아진 임청하의 불만이 있었죠. 마찬가지로 의천도룡기의 촬영 때도 장민의 분량 조절에 실패해서 그녀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서 왕정 감독이 형식적(?) 몰매를 맞는 사건도 벌어지기도 했었으니까요.
영성영화사의 향화강, 향화승은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천룡팔부 때는 꽤 조심했을 거라고 뇌피셜을 돌려봐요. 1년전에 제작한 의천도룡기가 흥행에 실패하는 바람에 속편을 예고하고도 만들지 못했고 천룡팔부는 무조건 성공을 해야하는 시기였거든요. 결국 천룡팔부도 실패해서 속편이 나오지 못했지만요.
장민과 임문룡 커플의 연기는 무척 좋았어요. 김용 원작의 전형적인 커플 느낌도 나면서 그들이 펼치는 티격태격도 좋았고, 점차 성장하는 허죽을 연기하는 임문룡도 보기 좋았어요.
허죽의 이야기가 볼만하다 싶어지면 천상동모의 이야기로 넘어가는데 이쪽으로 오면 이야기가 늘어져요. 일단 임청하와 공리를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화면 연출을 많이 해줘야 하기 때문에 그러면서 시간이 길어지고, 그들간의 관계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또 늘어집니다. 최후의 결전을 위해서 악역을 맡은 서소강이 등장해서 밑밥을 깔아줘야 하기 때문에 또 늘어져요.
그러다 보니 임청하와 공리의 연기가 제대로 펼쳐질 상황이 없어요. 무림 고수로 나오니 화려한 액션이라도 펼쳐지면 좋으련만 와이어에 매달려 날아다니면서 손을 펼쳐 공력을 발산하는 장면만 나와요. 그런데 그게 애니메이션이 덧칠해진 빔으로 나와요.
1994년도는 CG가 시작된지 얼마 안된 시기였고, 그래서 비쌌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클라이막스 씬 정도만 사용되고 나머지는 붓으로 애니메이션을 덧칠한 효과가 사용되었어요. 80년대에 사용되던, 그 시절 우뢰매에서 보던 그런 것들이 94년도에도 여전히 활용이 되다보니까 산맥을 날아다니면서 화려한 공력 대결을 펼치는 모습이 너무도 어설프게 보였어요.
절벽 세트를 만들어서 그 위를 와이어로 날아다니고 그걸 더 위에서 카메라로 잡으면서 역동감을 잡아낸 연출은 신선했지만 CG보다는 아직은 아날로그 특수효과에 의지해야했던 당시로서는 아쉬운 부분인 것 같아요.
그래도 미니어처 세트와 와이어, 실사합성 등 다양한 특수효과가 활용된 부분은 주목할 부분이에요. 서소강과 요계지의 대결은 무술에 익숙한 베테랑 남자 배우들의 열연 덕분에 박진감이 넘쳤지만 임청하와 공리의 장면은 많이 어설퍼서 아쉬웠어요.
영화 후반 얽히고 설킨 이야기를 빠르게 이어나가면서 마무리까지 가는 연출은 좋았어요. 이야기가 너무 꼬이고 원작이 너무 방대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별개의 한편의 영화라고 본다면 선전했다고 할 수 있어요. 여배우들의 어설픈 와이어 대결만 제외한다면 그 시절의 독특한 무협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컬트 무비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좀 있어요.
아자 역을 맡은 장민은 당시 25세로 주성치의 영화에서는 항상 단정하고 올바른 캐릭터로 나와서 주성치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까불고 말많고 영악한 느낌의 캐릭터를 맡아서 실감나게 연기해요. 평소의 느낌과는 많이 달라서 초반에는 어색했는데, 뒤로 갈수록 잘 어울렸어요. 이 시기에 다이어트를 했던 건지 상당히 마른 모습으로 나온 게 기억에 남아요.
영화는 1994년 3월에 개봉을 해서 HK$6,529,579의 성적을 거두었다고 해요. 1994년 개봉작품 중에서는 43위에 해당해요. 보통 천만은 넘어야 흥행이라던데 많이 아쉬운 성적이네요. 당시 여름에 촬영을 했는데 너무 더워서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했다고 해요.
검색을 하니 유튜브의 화어영화 채널에 작품이 올라와 있네요. 그 시절 영화가 라이센스 가진 채널에 잔뜩 올라와서 좋네요. 자막이 없으니 여전히 티빙이나 웨이브에서 봐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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