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삼향포 1985

티빙에서 개심삼향포를 찾아보았다. 보게 된 이유는 신용쌍향포 시리즈를 다 보고 나서, 1편의 감독이었던 장동조 감독이 만든 신용쌍향포속집(1986)과 개심삼향포(1985)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두 작품 모두 신용쌍향포의 두 캐릭터가 나오는 시리즈의 작품은 아니지만 배우만 교체하고 원래 기획을 그대로 활용해 만든 느낌이어서 찾아보기로 했다.

예상대로 개심삼향포는 기존의 신용쌍향포과 다른 점이 없었다. 주인공이 바뀌었을 뿐 기본적인 포맷이나 분위기가 같다. 증지위와 진백상, 진우가 이전의 신용쌍향포의 오요한과 잠건훈 콤비와 다를 바 없이 경찰로 등장해서 경찰서와 집을 오가면서 이러저러한 코미디를 한다. 

인터넷으로 조금 더 검색을 해보니 오복성(1983)의 세계관에서 파생된 신용쌍향포가 흥행에 성공하자 곧이어 속편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속편에서는 1편의 감독인 장동조 감독이 아닌 다른 감독이 연출을 맡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 다른 영화사에서 재빨리 장동조 감독을 데려다가 신용쌍향포 형식으로 만든 것이 개심쌍향포라고 한다. 

당시 홍콩 영화사는 무언가 하나 히트를 하면 미친듯이 베껴대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장동조 감독은 후에 다시 신용쌍향포를 제작했던 홍금보의 덕보 영화사에서 원표가 주연을 맡은 신용쌍향포속집을 만들었다. 좁은 홍콩 영화계 바닥에서 서로 서로 알면서도 다같이 해먹고 살던 시절 같은 느낌이 든다. 

개심쌍향포의 제작사는 등광영이 운영하는 영화사이다. 등광영은 왕가위 감독의 열혈남아와 아비정전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 배우이자 제작자이다. 그런 등광영이 증지위와 함께 개심삼향포를 기획 제작했다. 


영화는 기존의 신용쌍향포의 구성 그대로 시작된다. 사건이 발생하고 형사가 출동한다. 이 작품에서는 증지위와 진우 콤비이다. 한바탕 소동극이 벌어지고 사건이 해결이 되면 경찰서를 배경으로 시트콤이 시작된다. 주로 주인공인 증지위와 진우 콤비가 다른 경찰 동료와 장난을 치거나 여주인공들을 만나 농담을 주거받다가 사랑 싸움을 하는 내용이다. 

당시 홍콩 극장가는 코미디가 대세였다고 한다.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홍콩 작품들은 무술 액션이 가득한 무협이나 거대한 예산을 들인 스턴트 액션 영화라던가 했겠지만 실질적으로 홍콩의 시민들이 즐겨보던 작품들은 대부분이 홍콩을 배경으로 한 코미디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정말 유명한 작품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액션 영화의 홍콩 극장가 흥행 성적보다는 제목도 잘 모르는 코미디 작품이 흥행 성적이 더 좋은 경우가 많다. 나같은 해외 팬들에게는 정말 생경하지만 이 작품도 그러하다. 

보통 미화 80만불 이상이면 흑자 흥행으로 여기고 100만불이 넘으면 그때부터 흥행작으로 여긴다는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개심삼향포의 홍콩 흥행만 보면 100만불이 넘는다. 장동조 감독이 80년대 홍콩 시민들이 좋아하는 코미디를 당시의 정서에 맞게 잘 만들었다는 의미일 것 같다. 


주연을 맡은 세 명의 남자 배우들은 코미디 연기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배우들이다. 특히 증지위는 각본이나 연출에서도 재능을 발휘하는 한편 연기에 있어서도 굉장히 큰 존재감을 과시한다. 

최근에 80년대 초중반의 영화를 보다보면 스토리와 상관없이 배우의 연기만으로 장면을 때우는 것을 자주 보는데, 증지위 역시 혼자서 스탠딩 코미디를 하듯이 화면을 장악하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이 영화에서도 초반에 문을 사이에 두고 혼자 1인 2역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미스터 부-지용삼보(1985)에서 1인 2역을 하는 허관걸을 떠오르게 하는 장면이었다. 

여주인공 2명 역시 코믹한 연기를 재미나게 펼쳐보인다. 특히 염유의 연기가 눈에 띄었다. 주윤발과 적룡이 주연을 맡은 시티워(의담홍순, 1988)에서 주윤발과 서소강의 사이에서 3각 관계를 연기해서 인상이 깊었는데, 여기서는 미친듯한 코미디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 중후반 술에 취한 셋이 차를 타고 집에 가는 장면이 나온다. 음주운전 장면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술에 취해서 후진을 하는 바람에 뒤차를 박아버리고 피를 흘리는데, 그 후에 술에 취한 진백상이 운전을 하고 셋이 집에 온다. 그러니까 음주운전 사고를 낸 후에 도주를 한 셈인데, 이런 장면이 코미디의 하나로 태연히 등장하는 80년대는 정말 대단한 시대였구나 싶다. 

사실 번역에 되면서 코미디의 재미가 많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당시 홍콩 관람객들의 반응은 좋았다고 하는데, 광동어의 말장난 코미디가 한 몫을 했을 것 같다. 어느 나라든 그러하듯이 각자의 말로 된 언어유희는 그 나라 말을 쓰는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것이 있을테니 말이다.

그냥저냥 보았던 코미디였지만 마무리 부분에서는 나름 재미난 스턴트도 있었기 때문에 만족스럽게 본 것 같다. 이 영화를 즐길 한국 팬들이 얼마나 남았을려나 싶다. 80년대 초중반에 청춘을 보내신 형님 세대들에게는 익숙한 정서와 코미디일 것 같다. 

아쉬운 것은 그 시절의 정서가 지금의 눈으로 보면 굉장히 시대착오적이고 위험한 정서이다. 영화 중반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남녀평등의 시대야!" 라고 외치는 염유와 고가로의 모습이 보여지지만 특정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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