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재흑사회 1993

 애재흑사회는 독특한 느낌의 영화였어요. 일단 관지림과 임달화가 나온다는 정보와 제목에 흑사회가 들어갔기 때문에 느와르 영화이거나 액션 영화일 거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막상 영화는 멜로 영화였어요.


원제는 愛在黑社會的日子이고, 번역하자면 흑사회에서의 사랑의 나날 같은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흑사회를 배경으로 사랑을 하는 그런 이야기인데요, 내용도 그래요. 다만 흑사회라고 하기에는 화면과 스토리와 캐릭터가 너무 깔끔해요.

소프트 필터를 쓴 화면은 배경과 배우를 매우 부드럽게 보여줘서 화보 영상을 보는 느낌이 들어요. 흑사회의 조직 이야기라고 하지만 뒷골목이 배경이 아니라 카지노 건축의 지분을 다투는 내용이기 때문에 회사간의 합병처럼 진행이 되요. 그러다 보니까 세련된 레스토랑이나 술집, 화사한 저택이 주무대이고, 거기에 세련된 여배우들, 관지림, 엽동, 엽옥경, 왕소봉이 나와서 미모를 뽑네요.

조직의 이야기를 재벌의 이야기로 변경하면 그냥 멜로 드라마라고 봐도 무방할 내용이에요. 흑사회를 배경으로 세련된 주인공들의 멜로 드라마라니. 독특한 느낌이었어요. 



당시 홍콩 영화계는 영웅본색의 대흥행 이후로 흑사회를 배경으로 한 소위 강호 영화가 인기를 얻었고, 그런 홍콩 느와르 열풍으로 대만이나 한국에서의 수요도 급증했던 시기였어요. 거기에 영화가 돈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 조직들이 영화계를 장악하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그러다보니 조직의 두목들이 자신의 이야기나 혹은 조직의 유명한 인물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도 했어요. 파호가 대표적인 영화에요. 이외에도 여락전이나 경천대적왕이나 두호통집범, 취생몽사 같은 작품이 떠오르네요. 

거기에 밤의 세계를 다룬 작품도 많았고, 특히 여배우 중심으로 만들어진 영화 중에는 응소여랑 시리즈 같이 밤의 여자들을 다룬 작품도 많았던 것 같아요.  

연출을 맡은 전영강 감독은 92응소여랑 같은 밤문화를 다룬 작품에서 다수의 여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을 연출하기도 했어요. 필모그래피의 대부분 영화가 여배우가 중심인 작품이에요. 애재흑사회 역시 3명의 여배우 엽동, 관지림, 엽옥경과 그들의 연인인 임달화, 윤약명 간의 얽히고 얽힌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에요. 

전영강 감독은 영화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현장에 익숙했다고 해요. 조감독, 미술 감독 등을 거쳐서 왕조현 주연의 타공광상곡으로 감독 데뷔를 했고, 견자단 주연의 화피가 대표작이라고 하겠네요. 화피는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어요.



이야기가 시작되면 윤약명과 그의 부인 엽옥경, 그리고 내연녀인 엽동의 관계를 보여줘요. 그리고 관지림과 비지니스 파트너로 시작해서 연인이 되어가는 임달화의 모습을 보여줘요. 두 개의 관계는 임달화가 엽옥경의 오빠이고 윤약명의 매부인데, 우연히 만난 엽동을 좋아하게 되면서 다각화됩니다. 이쪽도 삼각관계, 저쪽도 삼각관계가 되는 거죠. 

조직간의 합병 이야기는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에요. 단지 캐릭터간의 관계를 연결하는 작용을 하거나 혹은 관계를 부각하는 데 사용될 뿐이에요. 

예를 들어 중간에 라이벌 조직의 공격을 당하는데, 임달화는 본래의 파트너인 관지림이 아니라 마음에 품고 있던 엽동을 먼저 구하는 모습을 보여요. 액션 장면은 딱 그걸 보여주기 위해 작동해요. 마지막의 공격 역시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깨졌던 둘의 관계가 다시 복원되는 계기를 만드는 작용을 해요. 

홍콩 느와르 액션이라고 생각하고 봤던 영화가 사실은 삼각 관계를 다룬 멜로이고, 피로 범벅이 되어야 할 거친 편집과 흔들리는 화면은 온데간데 없고 소프트 필터의 깔끔한 화면이 여배우들의 미모를 담아내고 있어요. 


기대와 다른 화면과 전개에 독특함을 느끼며 봤지만 다 보고 난 느낌은 아쉬움이네요. 깔끔한 화면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전형적인 삼각관계의 마무리거든요. 내용은 30년전 딱 그 시대의 감성이에요. 

바람을 피우다 들키고 내연녀는 울면서 떠나고 남자는 결국 부인에게 돌아가는 이야기. 잠깐 흔들렸던 마음은 자신을 위해서 몸을 던진 여자친구에게로 돌아가고 결국 그렇게 다들 원래 자리를 찾아가는 결말이에요. 독특한 느낌 그대로 스토리도 더 파격적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래도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봤어요. 관지림 누나의 미모를 한껏 즐길 수 있었고, 엽동, 엽옥경 누나도 이뻤어요. 화보 감상하는 느낌으로 잘 봤어요.

엽옥경은 이 작품으로 홍콩금상장 영화제에서 조연여우상 후보에 올랐어요. 참고로 수상은 풍보보가 신불료정으로 받았네요. 

한편 마지막에 엽동의 새 남자친구로 여송현이 잠깐 나오는데, 파릇파릇한 모습이 신기했어요. 마치 LA 컨피덴셜을 보다가 사이먼 베이커를 발견했을 때의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