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징 파이어 2021

 레이징 파이어, 원제 노화 중안(怒火·重案)은 진목승 감독의 유작입니다. 진목승 감독은 영화를 촬영하던 중에 암이 발병한 것을 알게 되고 촬영은 마쳤지만 후반작업 도중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58세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에요.

영화는 열혈형사 견자단과 한때 동료였지만 불의의 사건으로 범죄자가 된 사정봉과의 대결을 그린 액션 영화에요. 홍콩을 배경으로 두 인물이 격돌하는 스토리는 홍콩 액션 장르의 전형적인 설정이지만 모처럼 보는 설정이라 반가웠어요. 


2020년대는 홍콩 영화라고 불릴만한 게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시절이에요. 대부분의 주도권은 중국 본토로 넘어갔고, 홍콩에서 제작된 영화는 흥행을 하지 못하고, 그래서 잘 만들어지지도 않는 상황이에요. 꾸준히 홍콩을 배경으로 홍콩 영화인들이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흥행에서나 비평에서나 성공하는 작품이 드문 거 같아요.

유덕화나 고천락이 여전히 홍콩을 배경으로 액션 영화 장르를 만들어주는 게 너무 감사한 그 시절의 오랜 팬의 입장에서 레이징 파이어는 중국이 아닌 홍콩을 배경으로 홍콩의 감성이 담긴 작품이라 반갑고, 진목승 감독의 유작이기 때문에 슬픈 영화입니다.

영화는 구성이 조금 헐거워요. 견자단과 사정봉 두 사람의 대결을 좀더 타이트하게 극한으로 밀어부쳤으면 했는데, 상황 설정과 주변 캐릭터 묘사도 성실하게 하다보니 집중력이 조금 약해진 느낌이에요. 그러면서도 전개는 또 전형적이고. 아마도 진목승 감독이 후반작업까지 다 마무리를 하지 못한 탓일지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영화는 사정봉의 강렬한 악역 연기와 견자단의 강력한 액션으로 가득해요. 최근에는 착한 주연보다는 카리스마 악역에 더 심취해있는 듯한 사정봉의 연기는 여전히 믿고 볼만하며 견자단의 액션 팀이 선사하는 강렬한 액션 구성은 눈을 떼기 어렵게 하네요. 

단독으로 마약 판매책의 본거지에 침입해서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의 액션은 현대적 액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느낌이 들어요. 환갑의 나이지만 여전히 힘이 넘치는 견자단의 움직임이 좋았어요. 중간의 차량 레이스 장면도 굉장히 볼만했어요. 다양한 비쥬얼 이펙트가 활용되었겠지만 그럼에도 사실적인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다만 마지막 클라이막스의 도심 총격 액션은 조금 갸우뚱하기는 했어요. 아무리 봐도 마이클 만 감독의 히트의 도심 총격전을 떠올리게 만들었거든요. 아마도 오마쥬를 바치려고 했던 것일까요. 돈다발이 든 커다란 배낭을 등에 매고 소총을 들고 서로에게 쏴대며 펼쳐지는 장면들은 명백히 히트의 그 장면들이었어요.

사정봉의 마지막 모습과 연기는 꽤 강렬하네요. 유덕화 주연의 신 소림사에서도 악역으로 등장했었는데, 그때의 연기도 좋았지만 이번에도 그에 못지 않게 좋은 연기를 보여주네요. 어딘가 통하는 느낌의 악역 연기이기도 했어요. 그러고 보니 신 소림사도 진목승 감독 연출이네요.


영화는 2021년 금상장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어요. 오랫동안 홍콩 영화계의 최전선에서 활약해온 감독에 대한 예우일 것이고, 침체한 홍콩 영화계에서 여전히 이런 액션 블록버스터가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작품이기 때문일 거에요.

개인적으로는 견자단을 돕는 역할로 나온 담요문의 모습에서 세월의 흐름을 엄청 느꼈어요. 그 시절 깡마른 소년은 어디로 가고 왠 통통한 아재가 담요문의 눈을 하고 있다니.

사정봉은 젠엑스캅을 시작으로 진목승 감독과 8편의 작품을 함께 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진목승 감독의 페르소나 같은 배우였는데, 굉장히 많은 안타까움을 표현했다고 해요. 

진목승 감독은 성룡과의 인연도 깊고 뉴 폴리스 스토리에서 성룡과 사정봉과 함께 했고, 속편에 대한 준비도 했다고 하는데 이루어지지 못해서 아쉽네요. 하지만 뉴 폴리스 스토리2는 진행이 되고 있다고 하니 기대가 되요.


영화 초반에 견자단의 동료로 나와서 사정봉에게 죽고 마는 역으로 여량위가 등장하는데, 처음 홍콩 영화에 빠지게 된 계기였던 유덕화의 엽응계획에서도 유덕화의 동료로 나와서 영화 초반에 죽는 역이었는데 갑자기 그 때가 떠올라서 추억 여행도 해버렸어요. 

마찬가지로 판매책으로 나온 임국빈이라던가 노혜광이라던가 그 시절의 액션 배우들의 나이든 모습도 추억과 아쉬움을 동시에 남기네요. 고위직 경찰로 등장한 임달화는 최근에 너무 할아버지가 되어서 슬프네요. 

그나저나 요즘 홍콩 영화에서 주인공 여친 역은 거의 본토 여배우가 하는 것 같네요. 기분 탓인가.

원제 怒火·重案의 뜻은 분노의 강력계 형사 정도로 번역할 것 같아요. 견자단을 지칭하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