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호정영 1992

 비호정영은 아주 오래전에 극장에서 본 추억이 있다. 원제는 비호정영지인간유정이다. 오리지널 포스터를 보니 비호정영보다는 인간유정에 포커스가 맞춰줘 있다. 

실제로 비호대라는 홍콩 특수부대의 활약을 담은 듯한 설정으로 시작하지만 실상 내용은 아버지와의 갈등과 조직의 딸과 사랑에 빠진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래서 인간유정이라는 부분을 강조한 것 같기도 하다.



영화는 시작부터 강렬한 설정을 보여준다. 경찰관이었던 오맹달이 범인과의 사투 중에 실수로 아들을 죽이게 되고, 형을 잃은 동생은 그로 인해 아버지와 갈등이 시작된다. 성인이 되어 비호대의 일원이 된 동생 장학우는 형을 잃은 사고가 오랜 트라우마이다.

아버지 역시 그로 인해 경찰을 그만두고 밤업소에서 일을 하고 있다. 당시 동료 선배였던 경찰관 역시 일을 그만두고 조직의 일을 시작해 보스가 되어 있는데, 아들인 장학우가 하필 보스의 딸과 사랑에 빠지면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된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등장인물들이 담배를 오지게 피워된다는 것이다. 그 시절 홍콩 영화 대부분이 그러했다. 배우들이 담배를 입에 물고 산다. 그리고 불을 끄지도 않고 여기저기에 담배를 마구 버린다. 달리는 차에서 불이 붙은 담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밖으로 던져버린다. 여러 모로 대단한 시절이었다.


조직의 보스로 등장한 진패는 딸을 위한 답시고 사랑에 빠진 딸의 남친을 위협하고 죽이려 들고, 사랑에 빠진 주인공 장학우 역시 자기 가오 살리겠다고 딸 앞에서 애비를 위협하고 깔보고,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설정이기는 하지만 홍콩 느와르라서 그런지 여자 생각은 1도 안하고 지들 잘난 맛에 총질하다가 마무리가 된다.

그 시절에는 아마도 멋있다고 여기고 찍고 보고 했을 것 같다. 나도 그때는 그런 느낌으로 봤을려나? 그런데 시대가 변하고 3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니 진짜 등장하는 남자들이 해도 해도 너무하다. 그런 거친 남자들 속에서 나름 살아남으려고 강한 척 한 여자들에 대한 연민이 느껴진다.

여하튼 30여년이 지나 극장에서 봤던 그 영화를 ott에서 다시 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세월의 흐름을 느끼는 것보다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더 느끼게 된다. 


연출을 맡은 구례도 감독은 베테랑 장인 감독으로 여전히 영화를 연출을 하고 있다. 다작을 하면서 장르 영화를 찍다가 어느 순간 득도해 거장이 된 두기봉 감독과 달리 구례도 감독은 계속 비슷한 완성도의 장르 영화를 만들고 있다. 한때 아시아 호러 장르의 제왕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나한테는 중환영웅의 감독이다.

주윤발과 유덕화가 아니면 안 보던 시기였을텐데 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을까 싶었는데, 당시 천녀유혼2와 3를 보면서 장학우가 나오는 영화에 대한 신뢰가 생겨서 였던 것 같다. 첩혈가두에서도 인상이 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아버지와 갈등하는 연기를 제법 진지하게 보여줬는데, 중후반부터는 아쉬움이 있다. 스토리의 얽개가 전체적으로 아쉬운 탓일 것이다.

여주인공을 맡은 정수문은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서야 발견해서 깜짝 놀랐다. 유덕화와 함께한 니딩 유(2000)와 러브온 다이어트(2001) 등으로 2000년대 초반에 러브 코미디로 시대를 풍미했던 그녀가 19살의 나이로 데뷔를 한 작품이 이 작품이었다니. 검색을 해보니 신인상 후보에도 올랐었다고 한다. 특출나지는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무난한 데뷔였던 것 같다.

한편 오가려는 왜 등장했는지 아쉬움이 크다. 오맹달이 일하는 업소의 여사장으로 등장하는데, 스토리에 큰 영향이 없다. 어쩌면 그 시절 흑사회의 압력으로 인해서 출연했을려나 싶은 마음도 든다. 이 당시 오가려는 한해에 거의 20편에 가까운 영화 출연을 하던 시절이었다. 오가려 뿐만 아니라 90년도 전후로 홍콩 배우들은 1년에 최소한 10편 이상의 다작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다 조폭 때문일 것이다. 오가려는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화면에 섹시하게 나와서 인상이 남는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이자 결말의 사건이 벌어지는 곳은 영웅본색에서 주윤발과 적룡이 이자웅에게서 돈을 받던 절이다. 워낙 유명한 곳이고 자주 촬영을 하던 곳이라 그런지 보자마자 어딘지 느낌이 왔다. 언젠가 홍콩 여행을 가게 된다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마지막으로 총에 맞고 불구덩이 속으로 쓰러지는 스턴트 장면이 있는데, 도대체 저걸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아날로그 시절이니 스턴트 배우가 그대로 밀려났을텐데 저게 가능하나 싶다. 정말 저 시절 홍콩 액션은 미친 시절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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