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풍운 1990
성전풍운은 임영동 감독의 작품이에요. 임영동 감독은 작가 대접은 받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장인 감독 취급하기에는 아쉬운 그런 애매한 포지션의 감독입니다. 가끔은 시대의 공기를 담아내기도 하지만 어쩔땐 그냥 그런 장르 영화를 만들기도 했어요.
임영동 감독은 풍운 3부작이 유명해요. 용호풍운(1987), 감옥풍운(1987), 학교풍운(1988)은 각각 학교, 감독, 범죄라는 80년대 홍콩의 공기를 잘 담아낸 작품이에요.
그 중에서 국내에는 미스터 갱으로 소개가 되었던 용호풍운은 해외에서도 좋은 평를 받았고, 쿠엔티 타란티노가 저수지의 개를 만들 때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 중에 하나이기도 해요.
근데 왜 미스터 갱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니 임영동 감독의 또다른 작품인 반아틈천애(1989)는 타이거 맨이라는 제목으로 개봉을 했었어요. 당시의 수입업자들의 상업적 감각은 저런 제목이 통하리라 판단했을려나요.
풍운 3부작으로 흥행과 작품성에서 좋은 평을 받은 임영동 감독은 이야기의 배경을 더욱 확장해서 국제적인 첩보물의 장르를 가져와 성전풍운을 만들었어요. 중학생 시절이 비디오로 빌려본 기억이 있는데, 티빙에서 홍콩 영화 아카이빙을 둘러보다가 발견하고는 다시 보게 되었어요.
성전풍운은 국제 테러리즘과 그에 맞서는 요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영화는 폴란드 주재 미국 대사 일가의 암살 사건으로 시작되며, 유일한 생존자인 CIA 요원 레드너는 복수를 위해 테러 조직을 추적합니다.
한편, 홍콩에서는 정치부 형사 우정방이 무기 밀매를 하던 리가를 체포하게 되는데, 그녀가 테러 조직의 두목 한니발의 연인임을 알게 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돼요.
바르샤바를 시작으로 홍콩으로 넘어와 벌어지는 국제 테러리스트와 그들에게 가족을 잃은 cia 형사의 끈질긴 추격전이 일품입니다.
코만도와 매드맥스에서 악역으로 인상깊은 버논 웰스가 여기서는 한니발이라는 테러리스트 리더를 맡았고,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시대를 풍미한 올리비아 핫세가 중년이 되어 한니발의 여자로 등장해요.
홍콩 액션 영화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과장된 액션이나 쿵후 발레틱한 장면이 임영동의 영화에는 없어요. 최가박당4같은 작품의 과장된 코미디가 담긴 작품에서도 액션만큼은 리얼한 액션이 담겼던 기억이 있어요.
성전풍운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동안 그가 연출한 영화 중에서는 액션이 가장 강력해요. 오프닝의 헬기 테러를 시작으로 후반부의 보트 추격전까지 블록버스터 급 액션이 연이어져요. 어쩌면 직접 제작을 해서인지 굉장히 많은 자본과 힘을 들인 작품이라는 티가 나요.
CIA 형사와 홍콩 형사의 티격태격 공동 작전 수행이라는 설정은 이제는 뻔한 클리쉐이지만 80년대 당시에는 꽤나 트렌디한 유행이었어요. 임영동 감독은 추격전과 별개로 꽤 성실하게 두 형사의 투닥거림을 연출합니다. 지금와서 보면 철지난 80년대 마초스러운, 그러니까 아재틱한 내용이지만 그렇기에 애정이 갑니다.
성전풍운은 코믹한 느낌의 연출이 아니라 하드보일드한 액션 영화이기 때문에 그 시절 중학생 때 비디오로 빌려서 보았을 때는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들고 다시 보니 하드보일드한 연출이나 현실적인 액션이 오히려 와닿는 느낌이네요. 꽤 즐겁게 보았어요.
이수현이 맡은 형사의 여자 친구이자 저널리스트로 관지림이 등장하는데, 예쁜 외모를 활용한 연출 없이 진지하게 취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인상 깊었어요. 능숙하게 영어로 대화를 하고 뉴스를 진행하는 모습이 기존에 알고 있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달라요. 관지림 누나가 이런 연기도 할 줄 안다니. 나름의 발견이네요.
이수현의 동료 형사로 황광량이 등장해요. 홍콩의 4대 악역 중의 하나로 꼽히는 그가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형사라니! 라면서 보았는데, 예상대로 마지막에 배신을 하네요. 다만 그 과정에 대한 묘사가 많이 부족해서 후반부에 맥이 좀 빠지는 느낌이었어요.
사실 마지막 액션 장면은 조금 아쉬워요. 물론 그 전에 굉장히 강력한 액션이 연이어 펼쳐지기는 했지만 나름 반전의 카드로 내놓은 액션 장면이었거든요. 뭔가 결기찬 액션이 펼쳐지다가 마무리 될 줄 알았는데, 어딘가 어설픈 묘사와 함께 마무리된 느낌이 있어요. 그렇게 대단했던 테러리스트의 리더가 이렇게 허접하게 인질극을 벌이다가 당한다고?
성전풍운은 굉장히 공을 들여서 만든 작품이기는 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어요. 당시 홍콩 영화의 이미지는 과장되고 밝은 톤의 하이브리드 장르의 영화라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진중하고 현실적인 액션이 담긴 성전풍운은 인기가 없었을 것 같기는 해요.
다만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80년대 마초 감성 가득한 헐리우드 액션 영화에 버금가는 느낌의 영화가 홍콩에서도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만족해야했을 것 같네요.
임영동 감독은 홍금보 주연의 일촉즉발도 연이어 만들었지만 흥행에 실패하고 주윤발 주연의 감옥풍운2와 협도고비를 만들면서 재기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이기 때문에 그가 연출한 모든 영화를 차근차근 다시 볼 생각이에요. 심지어 헐리우드에 가서 반담과 만든 3편의 영화도 모두 좋아합니다. 맥시멈 리스크의 경우에는 성전풍운의 연출의 맥이 닿아있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ps. 중간에 광저우 공항 장면에서 계단에서 걸어내려가는 두 사람의 옆으로 마이크를 들고 수음을 하는 스탭이 찍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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